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까지도 해외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영어로 작성해 발표하고 외국 학자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 내용이 한국사회에서 공유되지 않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검토하고 논쟁하고 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을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재 영어로 출판한 논문의 내용을 한국어로 유통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학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습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세계의 질서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때리는 줄 모르고 던진 돌도 맞는 사람 입장에서 아프기는 매한가지이지요. 그래서 다수자 입장에서는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수자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혹시라도 왜 그리 불편한 긴장을 계속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 다수자인 한국인이 있다면, 한반도만 벗어나면 한국인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임종의 시간은 더 이상 일상적으로 존재하며 삶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치러내는 의식이 아니라, 숨기고 피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은 그런 '추한' 죽음을 사회적으로 은폐하기에 가장 적절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상적인 죽음은 자신의 품격을 지키며 불가피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생명연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의료적 처치의 중단응로 인한 기술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죽음의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의(밀레투스학파) 이론을 공부해보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가면서, 앞의 가설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뒤의 가설이 넘어서고 극복해가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같은 질문에 답하는 여러 가설이 경쟁하면서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지식이 살아남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과학적 사유의 핵심 요소입니다.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아프고 병드는 일이 더 자주 반복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강은 사랑하고 일하고 도전하기 위한 삶의 기본 조건입니다. 건강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라는 단어에서 쓰이는 종이라는 단어는 생물 분류에 있어서의 종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모두 20만 년 전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에 속하는 변이들이고, 피부색에 기초한 구분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피부색이라는 특정 형질, 즉 멜라닌 색소의 양 차이일 뿐이니까요.
같은 외상을 입어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외상환자 치료에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응급실 접근성에서 거주 지역마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지방 빈곤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크게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있었던 아이들의 죽음은 왜 피하지 못한 것일까요? 그 원인으로 부모의 낮은 학력을 탓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교통사고와 사고성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위험한 거주환경과 낮은 의료접근성을 방치한 한국사회의 책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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