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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것/책

그해, 여름 손님

by 오잉?! 2020. 6. 24.

 

한번은 테이블에서 노트를 옮기다가 실수로 유리컵을 넘어뜨렸다. 컵은 잔디밭으로 떨어졌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가까이 있던 올리버가 일어나 컵을 주워 제자리에 놓았다. 그것도 노트 바로 옆에 놓아 주었다.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대답이 가볍거나 태평한 말이 아닌 수도 있음을 내가 알아채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고 싶었어."

그가 그러고 싶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싶었어, 라고 다시 말하는 그를 상상했다. 갑자기 기분 내키면 그러듯이 친절하고 나긋나긋하고 야단스러운 말투였다.

내 노트를 다 가려 주지 못하는 파라솔이 달린 동그란 나무 테이블에서는 레모네이드에 든 얼음이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 멀지 않은 저 아래에서는 거대한 바위를 부드럽게 때리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뒤쪽의 이웃집에서는 반복되는 히트곡 메들리가 낮게 들려오는 그 오전에 나는 오로지 시간이 멈추기만을 기도했다. 제발 여름이 끝나지 않기를, 그가 가 버리지 않기를, 되풀이되는 히트곡이 계속 흘러나오기를, 그리 큰 소원도 아니고 앞으로 그 무엇도 더 바라지 않겠다고.

내가 무엇을 원했을까? 가차 없이 속마음을 인정한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왜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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