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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것/책37

우리 몸이 세계라면 - 김승섭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까지도 해외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영어로 작성해 발표하고 외국 학자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 내용이 한국사회에서 공유되지 않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검토하고 논쟁하고 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을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재 영어로 출판한 논문의 내용을 한국어로 유통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학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습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세.. 2020. 4. 29.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시뮬레이션 안에서 한동안 지내고 나면 현실의 사람들은 예측 불가능한, 그래서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로 느껴진다. 컴퓨터는 처음부터 '우정을 요구하지 않는 교제'라는 환상을 제시했고, 프로그램이 날로 정교해지면서 '친밀감을 요구하지 않는 우정'이라는 환상을 제시했다. 마주한 사람은 뭔가를 요구하지만, 컴퓨터는 그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는 관심을 쏟고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 알아야 순조롭게 돌아간다. 실제 사람들은 감정에 대한 반응을 요구한다. '실시간' 대화를 꺼리는 성향은 젊은이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한없는 '유입'을 통제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숱한 정보를 소화하고, 행동하고, 반응하기 급급하다. 그래서 무엇이든 온라인 활동이 해결책의 실마리처럼 느껴진다. .. 2020. 4. 29.
둘이 함께 살며 생각한 것들 편하게 책을 읽을 공간이 생기니 독서량이 조금 늘었다. 책을 억지로 보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보고 싶은 책들이 전보다 많아졌다. 나는 보통 소설을 많이 읽는데 시도 읽고 싶어졌다. 나는 싯구의 비유가 어렵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원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데 적당한 나이는 없다. 나는 이십대엔 아직 그래도 돼, 좀 더 불편하게 살아도 괜찮아, 라며 원룸 탈출 날짜를 연기했다. 나에게 더 집중하고 하루하루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사실 조금만 더 간절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불을 빨고 마당에 널어놓으면 바싹 마른 촉감에 행복해진다. 창문을 다 열고 바람이 들어와서 환기가 되는 집을 느끼는 것도 나는 좋다. 청소기를.. 2020. 4. 15.
구름의 출처(서울을 떠나지 않는 까닭) 우리는 제 속의 어린이의 유언을 받들 듯, 지레 미래가 버거운 제스처로 서로의 만만한 풋내에 코를 묻고 야린 보풀을 만지작거리며, 또 그런 상태로 지금까지다. 그렇게 여기가 아닌 저기의 여러 마음과 하도 사귀다 보니, 내가 살았던 시간도 그만큼 쪼개져, 내 나이는 어쩔 땐 그 쪼개진 기억만큼 곱해진 것 같고, 어쩔 땐 쪼개진 만큼 나눠진 것 같아, 나는 늘 지금의 나만 소외시키고 너무 어리거나 낡아버려, 그만 마음이란 게 번거로워 오려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주민에게 가까울수록 내 마음 한 조각이 가윗날처럼 반짝인다. 2020. 4. 12.